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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볼거리

1경 : 주간명월(晝間明月)

  • - 다른 명칭 : 돌 그린 안 / 달 그리 안
  • - 볼 수 있는 방법 : 선박대절(소형선박, 보트)
  • - 뜻 : 파도에 의해 생긴 해식 동굴로 바다에 비친 햇살이 반사되어 동굴의 천장에 달의 형체가 나타나는 현상
  • - 일출봉을 바라보는 광대코지 기암절벽 밑에 수중동굴 안, 오전 10시에서 11시경에 햇빛이 바다로 비추면 그 빛이 반사 되어 동굴 천장에 동그란 달이 형성되어 있고 달 주변에는 이끼가 구름형태로 되어 있어 이를 주간명월이라 한다.

2경 : 야항어범(夜航漁帆)

2경 : 야항어범(夜航漁帆)
  • - 볼 수 있는 곳 : 오봉리 해안도로(전흘동, 삼양동, 하고수동)
  • - 뜻 : 여름철 밤 멸치잡이, 오징어잡이, 갈치잡이 등 어선들이 밝히는 형형색색들의 불빛
  • - 수백여척의 고기잡이 어선들이 불빛이 해안도로에 밝혀 연인들이 다니기에 좋은 산책도로로 각광을 받고 있다.

3경 : 천진관산(天津觀山)

  • - 볼 수 있는 곳 : 동천진동 도항선 제1부두 접안장소 방파제
  • - 뜻 : 동천진동 지역에서 바라보는 한라산과 오름 전경
  • - 천진관산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모습과 제주도의 368개의 소화산테인 오름(기생화산)의 분포로 일부 봉우리가 보이는 특이한 자연 경관을 창출한다.

4경 : 지두청사(池頭靑沙)

  • - 볼 수 있는 곳 : 우두봉(동두)
  • - 뜻 : 우두봉(쇠머리오름/섬 머리)에서 바라보는 우도 전경
  • - 우두봉(높이 132m) 정상에서 우도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으며 초록빛 바다를 돌담(현무암)으로 경계한 파릇한 밭작물 자연과 흙(화산제)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쇠=소, 제주방언)

5경 : 전포망도(前浦望島)

  • - 볼 수 있는 곳 : 종달리와 상우목동 바다 중간 부분
  • - 볼 수 있는 방법 : 선박대절 또는 하우목동항 → 종달간 도항선 이용 가능
  • - 뜻 : 종달리 앞 바다에서 바라보는 우도 전경
  • - 종달리와 우도사이 중간바다에서 우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으며 이 곳에서 보는 우도 경관은 마치 소가 누워있는 와우형 형상 같다.

6경 : 후해석벽(後海石壁)

  • - 볼 수 있는 곳 : 걸멀레 지역
  • - 뜻 : 용암이 흘러 절벽으로 형성
  • - 화산활동으로 인하여 생긴 지층이 차곡차곡 쌓아 절벽을 이뤄 마치 병풍이 펼쳐진 것 같으며 선돌이 우뚝 솟아있다.
  • - 선돌 : 높이 120m, 넓이 20m, 높이 12m

7경 : 동안경굴(東岸鯨屈)

동안경굴(東岸鯨屈)
  • - 볼 수 있는 곳 : 영일동 검멀래 지역(검은모래)
  • - 들어갈 수 있는 시간 :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고 동굴길이 150m / 높이20m / 넓이 15m
  • - 그 밖의 명칭 : 콧구멍, 고래굴, 돌구멍, 해식동굴
  • - 검멀레 끝 부분에 이중동굴 천연으로 되어 있으며 썰물 때만 들어 갈 수 있다 안쪽 굴은 동안경굴이며 8월에서 9월 사이에 약 3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동굴음악회를 개최한다.

8경 : 서빈백사(西濱白沙)

  • - 볼 수 있는 곳 : 서광리 상우목동해안 조간대
  • - 그 밖의 명칭 : 홍조단괴해빈, 백모래, 산호모래
  • - 뜻 : 서쪽 바닷가의 하얀 모래 해변
  • - 서빈백사는 햇빛이 비추면 눈이 부셔 잘 뜨지 못할 정도로 하얀 모래이며 해수욕 후 피부에 모래가 달라붙지 않고 햇빛이 비춰도 모래가 차가운 것이 장점인 세계적으로 유일한 모래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곳 우도에서만 볼 수 있고, 수온 22℃~23℃ 정도의 맑은 바다에서 나올 수 있다. 종달과 상우목동 바다 사이 물 속에 넓미역(광폭미역) 뿌리에 같이 서식하고 있으며 바다 속에서 자라던 홍조단괴가 파도에 의해 육지로 올라오는데 그 과정에서 암초에 부딪혀 입자가 대, 중, 소로 부서지며 파도에 의해 올라와 쌓인다. 서빈백사의 모래를 무단반출 시 문화재보호법 제99조의 규정에 의해 5년 이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게 된다.

고인돌 유적

고인돌 유적은 동천진동에서 돌칸이 가는 도로에서 볼 수 있으며 우도에도 먼 옛날부터 사람들의 손길이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상석길이 200m, 너비 150m, 두께 60cm의 남방식 고인돌이다.

방사탑

동안경굴(東岸鯨屈)

우도의 방사탑은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하여 축조되었으며 사다리꼴과 원뿔형이 있다. 보통 2기가 한조이며 북쪽 방향은 하르방탑(남), 남쪽방향은 할망탑(여)로 구성되어 있고 축조물은 현무암으로 쌓는다. 방사탑 꼭대기 새의 형상은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액운을 쪼아 없애 달라는 소원을 담고 있으며 방사탑 시초 시 밥주걱과 솥을 묻는다. 밥주걱은 외부의 재물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라는 소망을 의미하며 솥은 불에도 강하기 때문에 마을의 재난을 막아 달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방사탑의 기원의 목적은 주로 마을의 액을 막기 위하여, 동네 젊은이 의 무사 안녕을 위하여, 나쁜 잡귀를 막기 위하여, 해녀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전염병·화재·해상사고 등을 예방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방사탑은 주로 영일동(2기), 하고수동(2기), 주흥동(2기), 동천진동(1기)에서 볼 수 있다.

선사유적지

우도 중앙동 우체국 200m 도로변에 선사문화 동굴입구 집 자리가 확인되어 선사인들의 주거지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제주 특유의 주거유형이다. 이러한 형식의 집 자리는 구석기 시대에 보편적으로 이용되었다. 우도는 신생대 제4기 홍적세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용암 동굴 또는 바위 그늘이 만들어 졌으며 선사인들에게 이는 큰 보금자리 역할을 하였다. 선사유적지 동굴 내부에는 탐라초기의 유물인 곽지리식토기, 화색토기, 가로 28cm 세로 16cm의 대형 갈판이 출토되었다. 갈판의 출토는 농경채집 생활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우도는 탐라시대 전기 2천년~1천 5백년 사이로 주거문화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설문대 할망 구비 전승 설화

소섬(우도)은 처음부터 지금처럼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었다. 설문대 할망이 외출을 했는데 바싹(조급히) 오줌(소변)이 마려웠다. 그래서 한쪽 발은 오조리(성산읍)의 식산봉에 디디고 한쪽 발은 일출봉에 놓아 앉아 오줌을 쌌다. 그 오줌 줄기의 힘이 어떻게 세었던지 육지가 파이며 오줌은 장강수(長江水)가 되어 흘러나갔고 제주섬 한 조각이 동강이 나서 떨어져 나갔다. 이 섬이 바로 소섬, 우도다. 그 때 흘러나간 오줌이 지금의 성산과 소섬 사이의 바닷물인데 그 오줌 줄기의 힘이 워낙 세었기 때문에 깊이 패어서 고래나 물개 따위도 살 수 있는 아주 깊은 바다가 되었고 그 때 세차게 오줌이 흘러가던 흔적으로 지금도 이 바다는 조류가 세어서 배가 난파되는 일이 많다. 여기에서 배가 깨어지면 조류에 휩쓸려 내려가 그 형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오름에 얽힌 설문대 할망의 설화
설화적으로 한라산을 창조 했다는 전설의 여신인 설문대 할망이 한라산을 만들기 위해 소가 누워 머리를 든 형국인 와우형의 우도에서 치마폭에 흙을 싸고 가다가 떨어뜨린 흙이 오름이 되었다고 했다.
설화 속의 설문대 할망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큰 거녀(巨女)였다.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아 앉아 한쪽 다리는 관탈섬에 디디고 한쪽 다리는 서귀포의 앞바다의 지귀도에 디뎌서 우도를 빨래돌로 삼아 빨래를 했다.

돌담문화 이야기

돌담문화 이야기

우도는 수중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섬이기에 조상들은 돌을 지혜롭게 이용하여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해 왔으며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 아름다운 돌들의 모습은 우도 주민들에게 기(氣)를 북돋아 주고 있다.
화산암은 대부분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우도는 아름다운 돌 문화가 형성되어 주변 울타리 담, 집담, 산담, 밭담 등 현무암의 암괴로 이루어져 우도의 독특한 경관을 자아낸다.

  • · 집담 : 집 울타리의 돌담(이형상 목사/남환박물) 경계와 소, 말을 막기 위함
  • · 산담 : 무덤의 울타리 돌담(김성구 목사/남천록) 무덤에 소, 말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
  • · 밭담 : 밭 울타리 (임제 목사/남영소승) 산에는 짐승, 들에는 가축들이 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하며 밭주 경계표시와 수시로 불어오는 태풍, 폭풍, 바람을 막아내는 바람방어 역할

웃우무개의 슬픈 이야기

115년 전 웃우무개에(상우목동) 손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손씨는 건강하고 잘생긴 뱃사공이었고 부인은 상군해녀다. 어느 가을날 손씨는 장사 차 며칠 예정으로 인천에 갔었다. 인천에 도착한 그는 장사로 왕래가 있는 어느 양반집에 기거하게 되었다.
그 집에는 집주인의 딸인 노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어려서 양반집 아들과 정혼을 하였다. 장성까지 하여 그와 약혼까지 했는데 약혼자가 급환으로 죽고 말았다.
사연인 즉 결혼도 하기 전에 남편 될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양반체면에 재혼을 시킬 수 없고 해서 처녀혼자 독수공방을 한다는 것이다. 처녀는 손씨의 장부다운 기풍에 반하여 그가 올 때마다 몰래 훔쳐보며 흠모하고 있었다.
일이 공교롭게 되려다 보니 며칠 예정인 일정이 늦어지고 말았다. 날씨가 악화되었던 것이다. 이 탓에 손씨가 인천에 묵은 기간은 두달이 더 되었다. 안그래도 노처녀는 손씨를 흠모하는 처지라 그들의 사이에는 집주인 몰래 가까워졌고 결국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게 되었다. 이 사실은 안 집주인은 딸을 불쌍히 여겨 여기서는 내 체면이 있으니 같이 살아서는 안되지만 제주에 가서 살려거든 가거라고 허락하였다. 날씨가 풀렸다. 손씨가 노처녀와 포구에 나와 배를 타려고 하니 장사배에 여자는 태울 수 없다고 노처녀를 실어주지 않았다. 손씨는 노처녀에게 살고 있으면 꼭 찾아오겠다고 다짐을 하고 배에 올랐다. 처녀는 선창가에 서서 떠나가는 배를 망연히 바라보다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몇일 후 배는 우뭇개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 곳에는 얼굴이 알 수 없는 여인의 시신이 밀려와 있었다. 손씨가 이 시체를 보고 아연 실색했다. 시체의 주인공은 인천 양반댁의 노처녀였다. 손씨는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냈지만 하는 일마다 낭패만 거듭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그 자식들도 잘 살지 못했다.
몇 년 후 이 사실을 안 그의 자식들이 정성을 다해 그녀의 무덤 앞에 제주 차리고 제를 지냈더니 그 때부터 손씨의 자식들이 잘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볼 수 있는 곳 : 우도봉)

우도등대 주변 안내도

우도등대 주변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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