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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볼거리

오동도는 코끼리 바위, 용굴, 거북바위 등의 기암절벽과 동백, 후박나무, 시누대 등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어 보는 사람들이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음악분수대

음악분수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기 위하여 2005년 10월 설치한 음악분수대는 폭 45m, 높이 30m로 정오부터 밤 10시까지 매 시각 15분~30분 간 가동된다. 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연출하는 분수의 종류는 12종이며, 물안개, 오아시스, 봉황, 갈매기, 물결, 등대의 모양이 연출되면 무로가 빛․음악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 한다.

용굴 전설

용굴 전설

오동도는 암석해안으로 높은 해식애가 발달해 있고 암벽에는 해식동과 풍화혈, 해식아치가 곳곳에 있다 오동도 남쪽 용굴이 대표적인 해식아치이다. 용굴에는 오백년 묵은 지네가 살고 있었다, 이 지네는 날씨가 흐리면 기다란 촉각만을 밖으로 내 놓고 있어 오동도에 해초를 채취하러 오는 아낙네들은 이 동굴을 지네굴이라 하여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오동도에 해초를 채취하러 왔던 여인이 있었다. 기다란 촉수를 내놓고 있는 지네의 위장술을 모르고 있던 여인은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 해초가 풍부한 동굴 주위로 계속 접근해 갔다. 이때 해초 아래에 머리가 쌀가마니만한 지네를 보고 여인은 졸도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남정네들은 배를 타고 몰려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 여인을 구하기 위하여 갖은 묘책을 짜냈다.
사흘 밤낮으로 불을 피워 연기를 동굴 속으로 흘러 보내자 지네는 기진맥진하여 여인을 등에 지고 나타났다. 사람들은 여인을 구하고 복수가 두려워 지네를 잡아 없애버렸다. 그 후부터 용굴에서 다시는 지네를 볼 수 없었다 한다.

동백꽃 전설

동백꽃 전설

어느 날 한 부부가 오동도로 귀양을 왔다 귀양 온 부부는 땅을 개간하고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렸다 그러나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간 틈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이 집안에 살림살이를 보쌈하고 나서 아내의 몸까지 탐하려 하였다 아내는 도둑이 욕정을 느끼자마자 달아나기 시작 했다. 그러나 아내의 발길은 도둑의 손을 피할 수 없었다. 아내는 하는 수 없이 남편이 돌아옴직한 동남쪽 낭떠러지에서 투신자살을 하였다. 날이 저물 무렵 돌아오던 어부는 단애(절벽) 밑에 떠오른 아내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부는 사랑하는 아내를 오동도 정산에 묻었다.

세월이 흘러 여인의 묘에서는 동백나무가 자랐고 동백나무에서는 절개를 상징하는 붉은 꽃송이가 피기 시작했다 여인의 마음을 담은 동백은 화수분처럼 번져 온 섬을 뒤덮었다. 이후부터 오동도에는 오동나무 대산 동백나무가 번져 눈보라 속에서도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이 꽃을 보고 여인의 절개와 지조가 서려 있다는 의미에서 동백꽃을 여심화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오동나무 전설

오동도란 지명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오동도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자생했던 것 같다. 상서로운 봉황새가 오동나무 열매를 따먹으러 남해 바닷가 오동도로 날개 짓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오동도에는 봉황도 날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동나무도 찾아볼 수 없다.
오동도에 오동나무가 사라진 이유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돈은 고려 후기 창년 옥천사에서 심부름하던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공민왕의 사부가 된다. 왕의 신임을 등에 업은 신돈은 진평후라는 봉작까지 받으며 기울어 가는 고려 왕조를 재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더욱이 왕권에 도전하는 일에는 가만있지 않았다. 신돈은 오동나무가 무성한 오동도에 여수의 봉산, 봉계, 구봉산, 쌍봉, 비봉, 금봉산 등에서 살고 있는 봉황새가 자주 드나든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불길한 징조였다. 그 이유는 임금을 상징하는 봉황이 오동도에 드나드는 것은 새로운 임금이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평소에 전라도라는 ‘全’자가 사람 ‘人’자 및에 임금 ‘王’자를 쓰고 있는데 불만족이었다. 더구나 남쪽 여수라는 곳에 절경의 오동도가 있어 서조인 봉황새가 드나드는 것을 알고는 불길한 예감을 했다. 필시 기울어 가는 고려 왕조를 맡을 인물이 전라도에서 나올 징조만 같았다. 그는 공민왕에게 이 같은 사실을 귀뜸하여 사람‘人’자 및에 쓴 ‘全羅道’는 들입‘入’자 밑에 임금왕 ‘王’자를 쓰도록 하였고, 그 후 봉황새의 출입을 막기 위해 오동도의 오동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렸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오동도에는 오동나무가 자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서로운 봉황도 찾지 않는다고 전한다.

토끼와 거북이 전설

오동도에 방파제가 설치된 후부터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지만 그 전에는 자산에 있던 토끼가 오동도를 용궁이나 유토피아처럼 여겼던 모양이다.
하루는 자산에 살던 토끼가 지척에 있는 오동도를 한 번 구경하고 싶었다. 토끼는 묘책을 찾다가 바닷가 가장자리를 유유자적하고 있는 거북이를 만난다. 바닷가에 나가 거북을 만난 토끼는 “오동도를 구경시켜 주면 좋은 보물을 주겠다.”고 거북을 꾀였다. 우직한 거북은 토끼의 말을 믿고 오동도 구경을 시켜 주었으나 토끼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거북은 화가 치밀어 토끼를 오동도에 실어다 놓고 가죽을 홀라당 벗겨버렸다. 이 때 이곳을 지나던 토신(土神)이 토끼 꼴을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어 오동도 억새풀밭에 가서 뒹굴라고 일러 주었다. 토끼는 토신이 일러준 대로 억새풀밭에서 뒹굴었다. 껍질이 벗겨졌던 몸에 억새풀이 달라붙어 토끼는 옛날보다 더 고운 옷을 입게 됐다. 그러나 토끼는 이때부터 거짓말은커녕 참말도 할 수 없도록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토끼 꾐에 속아 오동도를 오갔던 거북이는 아직도 오동도 동편에 거북바위 화석으로 남아 토끼를 노려보고 있다.

오동도등대 주변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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